애들이 자랄수록 어린이날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있다.
올해는 둘째 꼬맹이의 게임 팩 하나 사주는 걸로 대충 마무리했다.
내년까지만 견디면 된다.
내가 중2였을 때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다.
퇴원하는 날 아침, 그날은 따뜻하고 화창한 어린이날이었다.
초6이 13세여서인지 13세까지의 입원환자 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이 돌려졌다.
알록달록한 갖은 사탕 한 봉지.
중2인 나도 그때까지 만13세였던 까닭에 어린이였던 것이다. 행정이란...!
사탕봉지를 받아들고 애매한 감사를 표한 후
병원 문을 나서서 그 대학교 앞 도로를 걸어 내려갈 때였다.
당시 동네마다 흔하게 있던 음반가게 앞을 지날 때
쇼윈도 앞 성큼 튀어나온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~
ABBA의 Chiquitita.
["Chiquitita," ABBA, Voulez-Vous, 1979]
매년 오월의 햇살이 노곤하게 내리쬐는 이맘 때면
그 멜로디와 그 찬란했던 햇살의 느낌이
마치 내 몸 속에 사진을 찍어놓은 듯이 생생하게 살아난다.
어린이날 휴일에 공명이네 집으로 초대를 받아 온가족이 집들이 방문을 했다.
외식 대신 그 집 마당 테라스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다.
마침 들고 간 Gros Frere et Soeur의 Bourgogne Hautes Cotes de Nuits 한 병이 빛을 발했다.
화창한 날씨 덕분에 와인이 조금 덥혀진 느낌이었지만
파라솔 그늘에 앉아 솔솔 부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마시니 더 없이 향기로왔다.
날은 어린이날이었지만 실은 어른들의 날이 되었다.
윤기 흐르는 와인과 반가운 사람들의 웃음이
피곤한 삶을 회복시켜주는 휴일 하루였다.
형님, 형수님 감사합니다. 잘 먹었습니다.
Bourgogne
Hautes Cotes de Nuits
2008
Gros Frere et Soeu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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